들어가며 KAIST라는 경쟁적 생태계에서 성공은 측정 가능하다. 학점(GPA), 인턴십, 논문, 장학금. 겉으로 보기엔 나는 잘 해내고 있었다. KAIST에 입학한 첫 순간부터 나는 학업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데 집중했다. 가능한 한 일찍 연구에 참여하고, 미래를 위한 탄탄한 기반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1학년부터 높은 학점을 유지했고, 3학기부터는 심화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학부연구참여(URP) 프로그램에 참가해 우수상을 받았고, 6학기에는 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연구실 중 하나인 프랑스 Ecole Polytechnique의 LLR에서 6개월 연구 인턴십까지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학업적 능력’의 배지들이다. 그런데도 이 성취들 한가운데에는 이상한 공백이 있었다. 잠 못 자는 밤과 거른 식사, 말없이 지나간 학기들 사이 어딘가에 빠진 조각,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있었다. 나는 과제나 연구가 아니라 ‘관계’에서 실패했다.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고, 거의 사교 활동을 하지 않았다. 수면은 들쭉날쭉했고, 카페인과 관성으로 버텼다. 이제 졸업을 앞두고 나는 결론에 도달했다. 학업과 커리어 기준으로는 성공하고 있었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실패하고 있었다. 진짜 관계를 쌓는 데,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데,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돌보는 데 실패했다. 이 글은 내가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공간’을 한 번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에서 실패했던 이야기다. 그리고 한 번의 교환학생 경험과 예상치 못한 배움들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게 되었다. 더 행복해졌을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더 ‘제대로’ 성공하는 방식 말이다. 그라인드 나는 열심히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한다. 노력은 많은 것을 주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고, 기회를 데려왔고, 방향감도 선명해졌다. 다만 내 실행 방식은 제대로, 적어도 건강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초기 몇 학기 동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 기숙사 방, 도서관에서 보냈다. 동아리 박람회에 가지 않았고, 팀 프로젝트 밖에서 동기들과 어울리는 일도 거의 없었다. 효율을 최우선순위에 두는 나에게 관계는 효율적이지 않아 보였다. 수면은 불규칙했고 카페인과 추진력으로 살았다. 시험 기간엔 나흘 연속으로 잠을 거의 자지 않은 적도 있다. 카페인을 하루 1,000mg 가까이 섭취하던 때도 있었다. 3학기 이후부터 나는 마치 프로 운동선수가 훈련하듯 학업적 탁월함에 몰입했다. 일찍 연구 그룹에 들어갔고, 전공심화 강의를 들었고, 수강 계획을 정밀하게 짰다. A+ 하나하나가 내가 구축한 시스템을 증명하는 데이터처럼 느껴졌다. 일정표는 색깔로 구분되어 최적화되어 있었다. 잠은 소모품이었고, 식사는 미뤄졌고, 우정은… 선택사항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동아리에 들어갈 때 나는 연구실에 있었다. 그들이 주말 여행을 가거나 밤 산책을 할 때 나는 책상 앞에 있었다. 그들이 친구를 만들 때 나는 이력서를 쌓았다. 돌이켜보면, 강의실에서 내 옆에 앉았던 사람들의 이름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이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연결될 만큼 멈춘 적이 없어서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을 합리화했다. 관계는 ‘방해’라고, 나머지는 ‘사치’라고. 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성적이 증명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갈아 넣었다. 그 당시 나는 이렇게 믿었다. 친구를 사귀면 속도가 느려지고, 관계를 맺으면 성장에 제동이 걸린다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한 시간은 문제 풀이, 코딩, 논문 읽기 한 시간을 빼앗는다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잘라냈다. 내 일정은 가득 찼지만, 내 삶은 채워지지 않았다. 처음엔 잘 모르고 지나갔다. 좋은 성적과 연구 진전이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느낌을 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짐이 찾아왔다. 연결감 없이 ‘절차’를 수행하는 느낌.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인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냥 늘 피곤했다. 몇 년 동안 하루 3~4시간 수면으로 살면 그 이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인턴십이 준 경고 6학기 때 나는 6개월 인턴십을 떠났다. 대단한 기회였지만, 동시에 외로운 기회였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관계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KAIST 생활의 ‘연장선’으로 대했다. 열심히 일하고, 결과를 내고, 계속 밀어붙였다. 학업 여정의 ‘왕관’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경험은 거울이 되었다. 일은 자극적이었고 목표와도 잘 맞았다. 그런데 KAIST 기숙사 생활에서조차 있던 얕은 사회적 루틴이 사라지자,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업무적인 대화를 제외하면 며칠 동안 누구와도 개인적인 말을 하지 않는 날이 이어졌다. 함께한 것은 공부, 코드, 커피, 할 일 목록뿐이었다. 그러다 무언가가 바뀌었다. 최소한의 상호작용마저 사라지자 고립감이 선명해졌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오늘 나는 개인적인 대화를 한 번도 하지 않았구나”를 깨닫는 순간들이 반복됐다. 침묵이 너무 컸고, 비어 있는 저녁 시간이 끝없이 늘어졌다. 그때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대체 이걸 왜 하고 있지?”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쫓던 성공은 더 이상 성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기계적이었다. 성취는 하고 있었지만 성장하고 있지 않았다. 살아 있지 않았다. 바뀌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 바꿔야 할지는 아직 몰랐다. 교환학생: 전환점 진짜 변화는 7학기, 스웨덴 스톡홀름의 KTH 왕립공과대학교(KTH Royal Institute of Technology)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시작됐다. 솔직히 말하면, ‘인생이 바뀔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원 지원과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위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또 한번 나를 갈아넣을 학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마음 깊은 곳에선 루틴에서 벗어나 쉬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정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가 될 줄은 몰랐다. 그곳에서 나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도 열심히 살지만, 일 밖의 삶을 똑같이 소중히 여겼다. 주말엔 하이킹을 갔고, 수업 뒤엔 클라이밍을 했고, 가까운 강에서 카약을 탔다. 나는 처음엔 머뭇거리다가 점점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함께 요리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웃고, 음악과 철학 이야기를 하며 늦게까지 떠들었다. 여행을 했고, 춤을 췄고, 산과 강을 사랑하게 됐다. 야외를 즐기고, 친구를 만들고,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학업과 연구를 계속 해낼 수 있었다. 오히려 끊임없이 스트레스 받고 수면 부족인 상태보다 뇌가 더 잘 돌아갔다. 중요한 건 활동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존재하는 법’을 배운 것이었다. 나는 하루를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나”로 재지 않고, “어떻게 느꼈나, 무엇을 배웠나, 누구와 연결되었나”로 재기 시작했다. 그 학기, 나는 ‘지속 가능한 탁월함(sustainable excellence)’을 발견했다. 성공은 투입 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내가 가져오는 주의의 질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주의는 관계, 휴식, 기쁨으로 내가 영양을 받을 때만 가능했다. 처음으로 나는 “잘하고 있다”를 넘어, “잘 지내고 있다”를 경험했다.
KAIST로 돌아와서: 다른 방식으로 살기 KAIST로 돌아왔을 때, 나는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다. 충분히 잠을 자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진짜 우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된 누군가와 장기적인 관계도 시작했다. 특히 또렷한 순간이 하나 있다. 내 여자친구가 어느 날 말했다. “너는 잠을 제대로 자야 해.” 사실 그 말을 들은 건 처음이 아니었다. 룸메이트도, 교수님도, 의사도 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들었다. 교환학생 때 균형 잡힌 삶이 내 수행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미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험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생산성이 떨어지긴커녕 치솟았다. 집중이 더 잘 됐고, 문제를 더 빠르게 풀었고, 불안이 줄었다. 내가 ‘낭비’라고 믿던 시간이 오히려 힘의 원천이 됐다. 더 잘 집중했고, 더 빨리 일했고, 쉽게 번아웃되지 않았다. 잠이 낭비라는 믿음은 완전히 틀렸다. 성적에서도 변화가 보였다. 마지막 학기들은 KAIST 전체 기간 중 성적이 가장 좋았고, 그중 마지막 학기는 A0 한 과목을 제외하면 전부 A+로 내 인생 최고의 학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연료가 다 떨어진 상태’로 버틴 게 아니었다. 에너지가 있었고, 평온이 있었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내가 배운 것 돌이켜보면 내 실패는 악의나 오만 때문이 아니었다. 성공과 관계가 제로섬 게임이라는 오해 때문이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생적이다. 관계는 방해가 아니라 증폭기다. 예전의 나는 “덜 해내는 것”, “쉬는 것”, “관계에 시간을 쓰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진짜 성공의 열쇠였다. 나는 노력하지 않아서 실패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몰라서 실패했다. 관계는 인생의 부차적인 과제가 아니다. 오히려 핵심이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중심이며, 장기적으로 더 잘 성공하게 만드는 기반이다. 웃고 이야기하고 함께 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내가 모든 일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꿔 놓았다. 나는 생산성이란 나를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생산성은 에너지가 ‘정기적으로 다시 채워지는’ 삶을 설계하는 것이다. 기쁨으로, 사람으로, 목적의식으로. 중요한 건 주의의 질, 감정적 안정, 그리고 각 과업에 가져오는 에너지였다. 예전엔 성공과 사적인 삶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를 돌보고 타인과 연결되기 시작한 뒤 나는 더 회복력 있어졌고, 더 창의적이 되었고, 더 동기화됐다. 무엇보다, 이전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성공을 ‘측정 가능한 결과’만으로 평가하지 않게 된 것이다. 대신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친절한가?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가? 나는 지식뿐 아니라 지혜에서도 성장하고 있는가?
마치며 나는 KAIST 초기 몇 년 동안의 노력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구와 학점만큼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 일찍 깨닫지 못한 건 아쉽다. 예전엔 시험에서 떨어지는 게 두려웠다. 이제 나는, 진짜 실패는 ‘살면서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나는 여전히 학업적 성공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것을 새로 정의했다. 나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단절된 상태라면, 완벽한 GPA는 큰 의미가 없다. 내가 배운 탁월함은 ‘인간적일 때만’ 진짜다. 이제 나는 잘 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내 주변의 세계를 즐긴다. 물론 여전히 내 일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한다. 다만 그 대가로 다른 모든 것을 지불하지 않는다. 삶은 더 균형 잡혔고, 그 차이가 모든 것을 바꿨다. 관계가 선택사항이라고 믿던 시절, 나는 관계에서 실패했다. 이제 나는 관계가 필수라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더 좋은 학생일 뿐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 성적표로는 담아낼 수 없는 성공, 하지만 나는 평생 그 성공을 품고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