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듣는 실패 이야기는 대부분 이미 성공 이후의 이야기다. 결국에는 잘 풀렸고, 교훈도 얻었고, 모든 것이 어떻게든 정리된 뒤에 들려오는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실패는 어떨까? 실망이 아직 생생하고, 막 문이 닫혔고, 어둠이 여전히 곁에 머물러 있는 순간은 어떨까? 이 글은 바로 그런 이야기다.
나는 교회 안에서 자랐다. 주일학교, 청소년부, 수련회—내 삶은 신앙과 긍정이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속에 있었다. 나는 정해진 틀에 맞춰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죄를 고백하고, 축복을 구하는 것. 그런데 나이가 들고 삶이 복잡해질수록 그런 기도가 항상 솔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감사할 마음이 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찬양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을 때는? 하늘의 침묵이 귀를 울릴 만큼 크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2019년, 나는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KAIST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도교수님이 은퇴를 앞두고 계셨고, 나는 새로운 연구실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정말 잘 맞을 것 같은 연구실을 발견했다. 교수님은 내 연구에 관심을 보였고, 서로 이야기도 잘 통했다. 희망이 생겼다. 마치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박사과정에 지원했다. 그리고 석사 논문 디펜스를 무사히 마친 바로 그날, 불합격 소식을 들었다. 열려 있다고 믿었던 문이 눈앞에서 닫혀버린 것이다. 다행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 학기 더 머무를 수 있는 유예 기간을 얻었다. 또 다른 교수님을 찾았고, 매주 미팅도 했다. 이번에는 정말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원 마감일이 막 끝난 직후, 그 교수님은 결국 본인의 연구실과는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 번의 거절, 또 한 번의 갑작스러운 멈춤이었다.
나는 해외 대학들에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중국, 호주, 미국의 프로그램들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하지만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대전에 삶의 터전을 일구어 놓았고, 소중한 공동체가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모든 상황이 나를 밖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미국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원자력공학이라는 전공 배경 때문에 비자 심사가 추가 조사 대상으로 넘어갔고, 비자는 지연되었다. 결국 한 학기를 놓쳤다. 또 다시 강제로 멈춰 서야 했다. 또 한 번의 기다림, 또 한 번의 불확실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었다. 내 길, 내 미래, 심지어 나 자신까지. 정말 내가 이 길을 가야 하는 걸까? 내가 쫓고 있던 연구를 정말 좋아했던 걸까? 나는 소명을 따라가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단지 성공이라고 믿어온 어떤 모습을 좇고 있었던 걸까?
결국 나는 다시 KAIST에 지원했다. 이번에는 합격했다.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왔지만, 새로운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구실도 달랐고, 연구 주제도 달랐다. 뒤처진 느낌이 들었다. 벅찼다. 감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끊임없이 따라잡고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좋은 글귀를 외우고 루틴을 지키면서도 여전히 우울하다고? 어떻게 그렇게 강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어?” 그 말은 오래 남았다. 그리고 나를 흔들어 놓았다. 단지 정신 건강만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느껴야 하고, 어려움을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 기대 자체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혼란스럽고, 화가 나고, 길을 잃은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되는 걸까? 나는 커리어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실패하고 있는 걸까? 이건 단순히 상황의 위기가 아니었다. 정체성과 연결감의 위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신앙이나 전통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패는 사람을 이상할 만큼 고립시킨다. 마치 나만 힘들어하는 것 같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질문을 혼자만 던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우연히, 고(故) Timothy Keller가 시편의 한 구절을 다룬 강연을 보게 되었다. 그 시편은 빛이나 해답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어둠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났다. 그 구절은 깊이 와닿았다. 그게 바로 당시의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깨달았다. 오래된 지혜의 기록 속에도 혼란을 위한 자리, 슬픔을 위한 자리, 침묵과 날것의 감정을 위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그것은 밝고 희망찬 설교가 아니었다. 냉소와 의심, 절망으로 가득한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그 글은 남겨졌고, 존중받고 있었다.
그 사실은 내 안의 무언가를 바꾸어 놓았다. 종교가 있든 없든, 우리 대부분은 ‘괜찮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빨리 털고 일어나야 하고, 아픔을 충분히 살아내기도 전에 교훈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오래 그 고통 곁에 머물러도 되는 건 아닐까? 그 감정을 느끼고, 이름 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라도 말해볼 수 있다면 어떨까? 내 경우에는, 그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오히려 진짜 무언가의 시작이 되었다. 괜찮은 척하는 것을 멈췄다. 모든 게 괜찮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대신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 솔직함은 나를 단순한 위로보다 더 깊은 어떤 곳으로 데려갔다. 그것은 어쩌면 ‘명료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MBTI에 관심이 있다면, 나는 감정형(F) 비율이 92%다. 감정을 통해 세상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이 얼마나 크고 강하게 느껴질 수 있는지 안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버려진 것처럼 느껴져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을 수 있다. 실패자처럼 느껴져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을 수 있다. 혼자인 것처럼 느껴져도 사실은 깊이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돌아보면, 나는 여전히 왜 모든 일이 그런 방식으로 흘러갔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왜 첫 번째 박사과정의 문이 닫혔는지, 왜 비자가 지연되었는지, 왜 그 한마디가 그렇게 깊게 상처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모른다는 사실 자체와 화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진전이었다.
가끔은 완전한 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음 한 걸음이면 충분할 때가 있다. 희망은 언제나 터널 끝의 밝은 빛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때로 희망은 어둠 속에서 곁을 떠나지 않는 친구의 모습일 수도 있다. 때로는 그저 계속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당신의 여정이 아직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계속해서 문이 닫히고 있을 수도 있다.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여전히 여기 있다면—여전히 숨 쉬고 있고, 여전히 애쓰고 있고, 나름의 방식으로 희망하고 있다면—그 자체로 이미 강한 것이다.
실패는 사람을 고립시킨다. 하지만 동시에 누가 끝까지 남는지를 보여준다. 누가 들어주는지, 무엇도 해결할 수 없는 순간에도 누가 곁의 공간을 지켜주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때로 가장 깊고 의미 있는 관계는 축하의 순간이 아니라, 실망이 지나간 뒤의 조용한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러니 만약 지금 당신이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나는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으면 했던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은 망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 지독한 침묵 속에서도 말이죠. 그러니 어쩌면, 아주 어쩌면 어둠이 당신의 삶에서 마지막 문장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