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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서 괜찮다고, 처음 말해준 사람
저자

이돈영(KAIST 생명화학공학과)

발행일

2026-05-21 13:29:12



“너는 진짜 열심히 산다.”
이 말은 늘 나에게 칭찬이었고, 동시에 책임이었다.

카이스트에서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학생이었다. 수업, 연구, 대외 활동, 과대표, 학생회장, 해외 봉사, 대회 준비까지.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안심시켰다. 하루의 계획표는 늘 빽빽했고, 잠시라도 멈추면 불안했던 것 같다. 성과는 자연스럽게 쌓였다. 그리고 나는 그 성과가 곧 나라는 사람을 증명해 준다고 믿었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해 보였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바쁘게 지내는 건 좋았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던지는“대단하다”는 말은 나를 더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조금씩 이상해졌다. 작은 일에도 조급해지고 예민해졌다. 아침에 눈을 떠도 상쾌하지 않았고, 좋아하던 피아노 앞에도 더는 앉지 않았다. 메일함에 쌓여가는 답장하지 못한 메일들, 해야 할 일 목록이 끝없이 길어지는 걸 보면서도 이상하게도 손이 잡히지 않았다.당장 내일이 아니라, 몇 달, 몇 년 뒤까지 끊임없이 미래를 계산하고 있는 사람. 그게 그때의 나였던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는 다들 겪는 거겠지.’, ‘지금은 중요한 때니까.’ 그렇게 나를 달래고, 때로는 다그쳤다. 지금 돌아보면 가장 위험했던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의 겨울 인턴은 그런 나에게 마지막 경고장이었다. 아침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지하철을 탔고, 실험을 하고 논문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퇴근 무렵이면 몸과 마음은 공허했고 밤늦게 집에 도착하면 머릿속은 그날의 실수와 내일의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괜찮다고 믿었다. 이 또한 과정이고, 성장이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설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짧은 휴일을 맞아 집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은 오랜만에 내려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상하게도 그 따뜻한 얼굴이 더 버겁게 느껴졌다. 평소처럼 반갑고 익숙해야 할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다음 학기 얘기가 나왔다. 그때 갑자기 뭔가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숨을 삼키듯 억눌렀지만, 결국 터졌다. 엉엉, 참을 수 없이 울었다. 말 그대로 오열이었다. 항상 밝고 당당했던 딸이 이렇게 무너진 모습을 본 부모님의 얼굴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엄마의 놀라움과 슬픔이 가득 담긴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나는 실패했구나.’
학업의 실패도, 연구의 실패도 아니다.
‘나는 나를 돌보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돌아보면, 그 실패는 하루아침에 찾아온 게 아니었다. 늘 잘하고 싶었다. 아니, ‘잘해야만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래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과 없는 나는 무가치하다고, 그렇게 단단하게 믿어버렸다. 그래서 감정은 늘 뒷전이었다. 불안해도, 두려워도, 힘들어도 괜찮은 척했다. “다들 버티잖아, 나만 힘든 건 아니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밀어붙였고, 어느새 나는 나에게서도 고립되어 있었다. 심장은 이유 없이 쿵쾅거렸고, 지하철 안에서는 숨이 턱 막혔다.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고, 눈물이 나도 이유를 몰랐다. 그래도 멈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멈추는 건 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나에게 너무 잔인했다.

그날 밤, 울다 지쳐 겨우 잠든 나는 아침이 밝자 새벽에 엄마에게서 온 한 통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 상단에는 이렇게 찍혀 있었다.
“2025년2월12일 수요일 오전1시34분”
평소 밤11시면 꼭 잠자리에 들던 우리 엄마. 그 엄마가 새벽1시 반까지 깨어 있었다. 몇 번이나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며, 무슨 말을 해야 딸이 덜 아플지 고민했겠지.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또 울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 안에서 나는 인생에서 처음 듣는 말을 마주했다. 
“돈영아, 그냥 쉬어도 돼.”
“성과도, 속도도 중요하지 않아. 네가 웃고, 네가 행복한 게 더 중요해.”

누구도 내게 쉬어도 된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친구도, 선생님도, 그리고 나 자신도. 나는 단 한 번도 내게 그런 허락을 준 적이 없었다.‘아,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춰본 적이 없었구나.’‘한 번도 나를 돌본 적이 없었구나.’ 엄마는 말했다. “기본에 충실하며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희미한 빛이 보일 거고, 그 빛이 더디 보이면 그냥 잠시 앉아서 쉬어가면 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탁 하고 뭔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엄마의 힐링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에 나를 데리고 가서 맛난 음식을 잔뜩 먹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퇴근하고 돌아온 언니와 수다를 떨었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과일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였지만, 그게 얼마나 따뜻한지, 얼마나 소중한지 그제야 처음 알았다.


 
처음엔 여전히 불안했다.‘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남들은 달리고 있을 텐데, 나는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조금씩 풀렸다. 엄마는 매일 말했다.“성과 없어도 괜찮아. 조금 늦어도 괜찮아. 엄마는 네 편이야.”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 말은, 처음으로 내가 나를 좀 더 이해하게 만든 계기였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달라졌다. 숨이 덜 막혔다. 아침에 눈을 떠도 심장이 덜 쿵쾅거렸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처음으로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조금만 해도 돼.” “쉬는 것도 해야 할 일 중 하나야.”

나는 이제 안다.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 성과는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이 실패가 내게 가르쳐준 건 아주 분명하다. ‘관계는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나는 나를 돌보는 법을, 가족이라는 가장 안전하고 단단한 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배웠다. 완벽해야만 한다고, 당당해야만 한다고 믿으며 달려온 오랜 시간 끝에, 결국 나를 다시 일으킨 건 성과도 아니었고, 노력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 조건 없는 사랑으로 나를 바라봐준 가족. 그들의 존재와 그 관계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힘들어도 괜찮다. 멈춰도 괜찮다. 지금의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지금도 여전히 가끔은 흔들린다. 그럴 때면 나는 핸드폰을 열어, 엄마가 새벽 1시 34분에 보내준 그 메시지를 꺼내 읽는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이 글의 마지막에 남긴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이미 존재만으로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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